노인건강

치매공공후견사업을 조사하며 느낀 점

nemo75894 2026. 7. 18. 13:00

치매는 단순히 개인이나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짊어져야 할 중요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최근 노인 건강과 사회안전망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치매공공후견사업'에 대해 깊이 조사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사를 마친 지금, 제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과 마음 깊이 느낀 점들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법과 제도'라는 차가운 틀 속에 담긴 가장 따뜻한 손길

치매공공후견사업은 치매로 인해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해진 어르신들 중, 권리를 대변해 줄 가족이 없거나 저소득층인 분들을 위해 국가가 법적인 후견인을 지정해 주는 제도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법적인 대리인을 매칭해 주는 행정적인 절차'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례들을 조사해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사소하지만 거대한 변화: 밀린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를 보며 발만 동동 구르던 어르신을 돕고, 병원 진료를 무서워해 거부하던 어르신의 손을 잡고 동행해 주는 일.
  • 삶의 존엄성 확보: 통장 관리나 임대주택 청약 같은 재산 관리부터 복지서비스 신청까지, 후견인은 단순히 서류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고립되어 가던 한 인간의 '존엄한 일상'을 지켜주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세상과의 연결고리였습니다.

2.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는 '시민 후견인'의 위대함

이 사업의 가장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친족이 아닌,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일반 시민들이 공공후견인으로 활동한다는 점입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치매 어르신의 일상을 책임지고, 병원 약을 챙기며, 가계부를 대신 관리해 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도 묵묵히 헌신하는 시민 후견인들이 많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가족 해체'와 '초고령 사회'라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우리 사회가 아직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따뜻한 연대감을 품고 있음을 증명하는 현장이었습니다.


 

3. 좋은 취지 뒤에 가려진 아쉬운 현실과 과제들

  1) 성년후견제도의 현실과 한계

  •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선임 절차: 치매 환자의 자산을 매각해 치료비나 돌봄 비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법정 후견인이 되어야 하지만, 선임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만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 지나치게 제한적인 권한: 후견인이 된 이후에도 법원의 허가 범위는 단순 생활비나 병원비 지출 수준에 그칩니다. 비대면 금융거래 등 일상적인 경제 활동도 극히 제한되어 있어 자산을 유연하게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 보호에만 치중된 행정: 법원이 후견인 선임부터 감독까지 전담하면서 치매 환자의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 오직 '보호'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치매 환자의 성년후견제도 이용률은 1%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2) 현실적인 한계와 보완점 

제도의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조사를 진행할수록 현실적인 한계와 보완점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 여전히 낮은 인지도와 참여율: 제도가 시행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이 서비스를 알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 지역별 편차와 구조적 한계: 수도권이나 대도시를 제외한 일부 지방의 경우 인력 부족이나 매칭 문제로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격차가 존재했습니다.
  • 지속 가능한 지원의 필요성: 후견인의 헌신에만 의존하기보다, 이들이 더 전문적이고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법적·재정적 지원 시스템이 한층 더 든든하게 다져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극소수의 혜택: 현재 독거 치매 환자는 약 20만 명에 달하지만, 실제로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환자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 낮은 처우와 인력 대기: 후견인 활동비가 환자 1명당 월 20만 원 수준에 불과해 새로운 인력 유입이 적습니다. 반면, 이미 교육을 마친 후견인 후보자 700여 명은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고 대기 중입니다.
  • 행정적 평가 지표의 한계: 치매안심센터들이 업무 난이도가 높은 후견 사업 대신 점수를 따기 쉬운 단순 서비스 제공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국 치매안심센터 중 절반에 가까운 116곳은 후견인 업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3) 해외 사례 (일본)와의 비교

  • 지역 사회 밀착형 지원: 일본은 2000년에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한 이후 제도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지자체마다 '성년후견센터'라는 핵심 기관을 설치해, 시민들이 치매에 대비해 손쉽게 상담과 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복지 서비스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4)  개선 과제 및 전망

  • 급증하는 '치매머니': 현재 국내 고령 치매 환자가 보유한 자산 규모는 154조 원에 달하며, 2050년에는 500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됩니다.
  • 전문 지원 인프라 부족: 자산 규모는 급증하는 반면, 국내 치매안심센터에는 후견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없는 등 지역 사회 내 전문 지원 창구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 해결책 제시: 전문가들은 전문 후견 기관을 신설하거나 치매안심센터 내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등 현실적인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4. 조사를 마치며: "누구나 나이 들고, 누구나 약해진다"

이번 조사를 통해 치매공공후견사업은 단순한 복지 혜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맞이할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안전망"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의사결정 능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때 내가 홀로 남겨지더라도 국가와 이웃이 내 존엄성을 지켜줄 것이라는 신뢰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따뜻한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이 단 한 분도 빠짐없이 세상의 따뜻한 품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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